안녕, 오늘도 허송세월하며 꿈틀거리는 둔둔이에요. 전날 오후에 빨랫감을 돌려놓고 까먹어서 급하게 다시 돌리고 다 된 빨래를 널고 왔어요. 집 안에만 있다 보니 언제 이렇게 날이 추워졌는지 깜짝 놀랐어요. 집 안에만 있으면 멘탈에 안좋다는 건 알지만 집 밖으로 나가려면 준비 과정이 너무 길어서 병원을 갈 때나 친구를 만날 때를 제외하곤 나가기가 쉽지 않아요.
외출할 때 마다 오른쪽 눈을 가릴 안대를 쓰고, 안경도 하나 쓰고, 발목이 꺾이지 않도록 테이핑을 하고 보행기를 현관까지 굴려 내려야 해요. 하필 집이 1층이긴 1층인데 집 아래에 -0.5층이 있어서 1층이라기 보다는 1.5층인 느낌이라 보행기를 현관까지 굴려 내는 것도 생각보다 엄청 힘들어요. 그냥 던져 굴리면 고장날 게 뻔하니까 한 손은 계단 난간을 잡고 다른 한 손은 보행기를 잡고 한발 한발 발을 내리며 보행기를 내리는데 진짜 진심 왜 내가 1.5층을 샀지... 왜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을 골랐지...하며 원망을 하다가도 아 여기 GH임대주택이라 골랐지 하며 스스로를 탓하다 말아요. 여튼 이런 복잡한 과정이 있다 보니 더 집 밖으로 안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집이 1.5층이 아니라 1층이었으면 더 좋았을 걸... 하지만 이미 이사온 거 어쩔 수 없죠. 여기서 최대 20년은 살 수 있으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살아야죠 뭐...
제가 쓰는, 이모님께서 사 주신 보행기에요. 보행기를 쓰기 전에는 지팡이를 썼는데 전혀 몸이 지지가 되지 않고 계속 넘어져 다리에 흉터가 마를 날이 없어서 결국 보행기를 쓰게 되었어요. 보행기 덕분에 넘어진 적은 없는데 이러다 보행기에 안착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네요. 당장 지금은 넘어지는게 더 위험하니까 얌전히 보행기를 끌고 있지만요. 지금 제 면역력과 회복력은 정상인에 비해 너무 떨어져서 단순 찰과상이 곪고 곪아서 표피층을 녹이는 참사까지 벌어져 다리에 큰 흉이 졌거든요. 그 외에도 자잘하게 넘어지며 다친 상처가 피부과 진료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모조리 흉으로 남아서 더는 보행기 사용을 미룰 수 없었어요. 정말 이대로 보행기에 발이 묶이면 어쩌죠...? 내년 1월에는 오빠 결혼식도 있는데 다리가 이 모양이라 결혼식장에 가면 친척 어른들이 얼마나 놀라실지 벌써부터 불안불안하네요.
달력은 이미 11월이 되었는데 제 상태는 날로 갈수록 되감기를 하고 있네요. 건강은 점점 나빠져가고, 회복할 기력도 없고, 운동할 체력도 없고... 억지로라도 운동을 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몸살에 객혈 토혈만 나서 응급실만 갔다 왔네요. 당분간은 운동은 안하는게 맞는 것 같아요. 이제 제 보호자라고 할 수 있는게 오빠 뿐인데, 이미 살림을 합쳐 새언니와 살고 있는 오빠를 새벽마다 응급실에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오빠는 괜찮다고 하지만 어떻게 괜찮겠어요. 새벽에 병원으로 달려오면 날 밝아서 일하는 것도 지장이 있을거고 피토하는 저를 보며 오빠 멘탈도 파슬파슬 갈라질테니까요.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정말 우리 집안의 건강의 마지노선은 오빠가 맞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제가 고3때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50에 치매에 걸리셨고, 저는 나이 29살에 뇌졸중과 함께 다발성 장기부전이 와서 골골대고 있으니까요. 아니 나는 살아있는게 다행인가...?
뭔가... 매일 매일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고 있는데 하루 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지기는 커녕 오히려 진절머리가 나고 숨이 턱턱 막혀요. 아 오늘도 살아있네... 내일도 살아있으려나? 어제도 살았었지... 같은 느낌이랄까? 분명 병에 걸린 초반(극초반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 하루종일 얼타고 있었음)에는 하루 하루가 소중하고 의욕적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오히려 질리기만 하네요. 하지만 살아있는 목숨 끊을 수는 없으니 '살아 있으니 살아간다'는 느낌으로 살고 있어요.
초반에 뭐라도 해 보려고 이것 저것 취미거리도 만들어 보고 옛날에 쳤던 피아노도 사고 이래 저래 부산을 떨었는데 지금은 죄다 당근행 열차를 타고 떠났네요. 뭐라도 사회적 활동을 해 보려고 원고작가 알바를 하고 있는데 정말 이것 외에는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침대에 누워만 있어요. 이러다 남은 근육도 다 지방으로 바뀔 것만 같아요. 안그래도 살이 너무 쪄서 검사를 받았는데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라네요? 어이없어... 살 찌는 것도 게을러서가 아니라 병 때문이래요. 이젠 몸이 어떻게서든 병명을 늘리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계속 몸이 나빠지지? 운동을 못하는 것 외에는 건강식으로만 먹고 나름 스트레칭도 하고 이것저것 하는데 결론은 [안좋음]이에요. 않좋음도 아니다 그냥 [나쁨]이에요. 몸에 정상인 부분이 머리털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집엔 점점 약통만 늘어가고 약 챙겨 먹을 시간을 설정해 둔 알람만 늘어가요. 한창 열심히 살 나이인데, 이것 저것 일하고 먹고 사느라 분주할 나이에 저는 왜 이러고 있을까요? 병이 커다란 시궁창 오물처럼 몸을 덮고 있는 것 같아요. 무겁고 힘들고 짜증나요. 어릴때부터 아동학대와 학교폭력으로 얼룩진 삶이 성인이 되어서는 질병으로 얼룩져가고 있어요. 어렸을 때 몸이 안좋은 걸 너무 방치해서 그런가... 그런데 어릴 땐 정말 병원 갈 돈도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요. 병원이 무슨 말이야 급식비도 없었구만 병원을 어떻게 가나요... 그때부터 덕지덕지 쌓여진 일들이 하나 하나 늘어나서 지금의 제 상태가 된 걸까요? 내 탓도 아닌데 왜 내가 이런 고생을... 진짜 너무 화가 나는데 할 수 있는게 없어서 더 답답하네요.
내일은 또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뭘 할 수 있는게 없다 보니 할 수 있는게 없어요. 해봐야 또 이렇게 아무렇게나 글이나 끄적이겠죠. 하다못해 빨리 시각장애(우측단안) 인정이나 되어서 활동보조인이라도 왔으면 좋겠어요. 그럼 대화를 나눌 상대라도 있고 뭐라도 하게 될 테니까요. 시각장애 심사 1차 보류 판정을 받아서 추가 검사를 받고 재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번달 중순에 하는 검사 결과가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 피곤하네요. 그냥 얼른 끝내고 쉬어야 겠어요. 다들 안녕, 내일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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